단어이야기

한중일 세 나라에서 한자와 한자어의 발전과 현황

(1) 중국에서의 한자의 발전과 현황

중국 서사의 문자에서는 한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중 하나이며 , 세계 4 대 문명의 문자 시스템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문자다 . 한자는 지금까지 가장 긴 시간 동안 사용되어온 문자다 . 세계 문자 시스템 가운데 한자의 글자 수가 가장 많다 . 이체 문자를 포함하면 10 만자 이상이 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자는 은상시대의 갑골문자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청동기에 새겨진금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룬 후 조칙을 내리고 문자의 통일을 선언하고 소전의 시대를 맞이했다. 한나라에 이르러서는 한때 예서가 유행했다 . 한나라 말기에는 예서가 해서로 진화하여 , 위진남북조시대에 큰 발전을 이루었고 , 수당오대에는 번영기를 맞이했고 , 송 , 원 , 명 , 청나라에 때에 성숙해져 , 현재에 이르렀다 . 현대한자는 해서화 된 한자로 , 번체자와 간체자가 포함되어 있다 .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한자칠체’ 는 갑골문 , 금문 , 전서 , 예서 , 초서 , 해서 , 행서를 가리킨다.

오늘날까지 중국은 한자를 다시 만드는 큰 사업을 여러 차례 행했다 . 그 중 최초로 대규모로 계획적으로 진행한 것은 진시황제의 ‘ 서동 문자 ‘ 였다 . 그는 한자 자형의 통일을 이루었다. 20 세기에 들어서 , 중국에서는 문맹자를 없애기 위한 한자의 간략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며 , 1935 년에는『 수두자연기』(300 문자 ),『 간체자보』(2300 자 이상 ) 등이 출판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국가 주도로 한자의 간략화와 정리 사업이 추진되었다 . 1965년에 발표된『인쇄통용한자자형표』는 ‘간체자’ 자형의 규범이 되었고 , 1998 년에 출판된『 현대중국어통용자표』는 현재 사용되는 ‘통용자’ 의 규범이 되었다.

사우신 (謝雨新)

(2) 한국에서의 한자의 발전과 현황

한자는 BC2~3 세기에 한국의 고대국가에 유입되어 서면 문자로 사용되었다 . 이후 한민족의 역사 , 문학 작품 등이 한자 , 한문으로 기록되었고 , 한민족의 언어를 한자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 신라 시기에 사람들이 자기 언어를 한자로 표기한 이두 ( 吏讀) 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후 조선의 세종대왕이 일련의 표음문자를 창조하고 그 원리를 책으로도 설명하였는데 ,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 ( 訓民正音)’ , 즉 현재의 ‘한글’ 이다 . 몇 세기에 걸쳐 한국은 실생활에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였다.

그러나 이후 한자의 위상이 점차 낮아지다가 , 1948 년에 ‘한글 전용법’ 을 반포하여 모든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 이로써 법적으로 한글의 정통성을 확정하였다. 1970 년에 한국 정부는 ‘한자 폐지 선언’ 을 발표하여 ,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과서에 한자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였고 , 6 년의 초등교육 과정에서 한자 과목을 없앴다 . 그러나 곧 이 선언을 철회하고 , 한자 관련 정책을 제정하고 1800 개의 한자를 교육용으로 규정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이 배우게 하였다 . 2000 년 무렵부터는 중국 및 일본과의 보다 적극적인 교류를 지원하고 여행 업계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하여 지하철 안내판이나 도로의 교통 표지판 등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하였다 .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자의 대부분은 고대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던 번체자이다 . 특히 교육용 한자 1800 자는 번체자를 정자로 삼고 있다 . 자획을 간소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한편 , 한국은 한자한문으로 쓰여진 방대한 문헌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에 국가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학술기관이 그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3) 19 세기 일본인과 한자말 – “과학, 사회, 혁명, 연애”

한자 하나하나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 한일중 3 국에서 사용되는 한자말 중에는 19 세기에 일본인이 서양 문헌을 번역해서 만든 단어도 많다. 예를 들어 “과학(科學)”, “사회(社會)”, “철학(哲學)” 등 기본 어휘는 “일본제”이다. 내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2007~2009 년 베이징에서 근무할 당시 중국의 서적과 지식인들을 통해서였다.

 ”정당(政黨), 간부(幹部), 혁명(革命), 경찰(警察), 민법(民法), 국제법(國際法), 의무(義務)” 등 정치·법률 용어, “이성(理性), 의식(意識), 목적(目的), 긍정(肯定)/부정(否定), 주관(主觀)/객관(客觀), 구체(具體)/추상(抽象)” 등 추상적 개념, “물리(物理), 인력(引力), 세포(細胞), 분자(分子)/원자(原子), 고체(固體)/액체(液體)” 등 학술 용어, “광장(廣場), 전화(電話), 상식(常識), 장면(場面), 연애(戀愛)” 등 생활 용어 등,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중국과 한국에서 보급된 단어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경제(經濟)”도 그렇다고 한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중국말을 참조한 것이지만, 경세제민은 지금으로 말하면 정치에 가까운 개념이며, economy와는 다르다. 알아보니, 중국은 한때 economy를 “자생(資生)”이라고 표현했었다. 물자, 돈, 생활. 좋은 번역어라고 생각하지만, 정착되지는 않았다.

서양의 책을 번역하고 구미 개념을 한자말로 바꾸려는 노력은 일본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였다. 중국도 그런 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일본은 법률 제도, 과학 기술, 서양 문물에 대해 매우 큰 관심과 학습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에도(江戶) 전기 이후에 “난학(蘭學)”의 축적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옛부터 두보(杜甫),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의 한시를 즐기고, 삼국지, 수호전을 애독하고, 에도시대에는 주자학이 관학(官學)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논어를 배웠다. 한자 지식이 교양의 큰 기반이었던 것이다.

미지의 개념을 번역하려는 옛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21 세기에도 한일중 3국이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미치가미 히사시 (道上尚史)